[설명환의 IT읽기] IT와 언어 전쟁

최영무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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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훈민정음 28자를 완성했도다. 이 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가 될 것이며 이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선 사람이면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쉬운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 창제 반포 3년 전인 1443년에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그로부터 576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문맹률 1% 미만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UN은 문자 없는 나라들에게 한글을 제공하고 있다. 한글은 표음문자이므로 배우기가 쉽다. 현재 한글은 3개 국가가 국어로 삼고 있다.

60년 전에 가난했던 한국이 반도체 강국, 세계 최초 5G 상용화, 세계 3대 수소차 양산국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글의 역할이 컸다.

(사진설명: 훈민정음언해본. 출처=문화재청)

IT 기술은 본래가 한국 태생이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IT 산업의 구조상 모든 프로그램이나 명령어가 영문이다. 

다국적 IT기업들이 한국의 언어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한글화가 안된 SW는 현지화가 덜 된 제품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한글판 작업이 요구됐다. 한글 표현에 대한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1990년대까지 한글화된 SW는 버그가 많았다. 그래서 당시 어도비 포토샵 사용자들은 한글판 보다 영문판을 더 선호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1988년 한국 진출 이후, 한글 윈도우 3.0, 한글 엑셀 2.1, 한글 윈도우 95를 차례로 출시하면서 한국 IT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이에 힘입어 1989년 국내 기업도 훈민정음, 보석 글 등의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선보이며 IT 한글화에 가속도를 붙었다. 

이후 한글 키워드 검색과 한글 도메인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출현했다.

한글 단어가 인터넷 서비스와 만나면서 그 자체로 상품이 됐다. 포털의 검색광고에서 한글은 그야말로 고부가가치 상품이 됐다. 네이버에서 '맛 집'이나 여행'이라는 한글 단어 하나는 한 달 기준으로 수백만 원에 팔린다. 

한글.com, 한글.kr 도메인과 넷피아의 한글인터넷 주소 등을 통해 한글은 강력한 기업 브랜딩 도구로 등장했다. 영문 도메인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한글 키워드 마케팅이 가능해지면서 한글도메인이 판매되고 있다. 

IT가 한글을 만나 수천억 원대의 시장을 창출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글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글 정보화 연구나 올바른 IT 한글문화 정착, 보급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계 기업인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한글 전문가(terminologist)를 채용해 정확한 번역과 표기법을 알리고 정착시키는 용어의 표준화·한글화를 한동안 진행했었다.

(사진설명: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 건물의 모습. 출처=위키백과)

영어 사용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문화영토 확장과 함께 IT 상품 수출로 이어지는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언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외국의 경우 정부 차원의 위원회가 만들어져 용어의 표준화와 자국어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프랑스·독일·영국·일본 등이 자국어 보급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선두에는 중국의 '공자학원'이 있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주요 정부부처가 총망라된 범정부 기구로 중국어를 국제어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세계에 전파하는 데 애쓰고 있다. 
 
프랑스는 IT 관련 용어 정리를 위한 기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어기본법 제17조(전문용어의 표준화 등)에 따라 민간과 협업으로 IT 용어 표준화(한글화 포함)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설명: 캄보디아에서 한글을 전파하고 있는 한글세계화문화재단 관계자. 출처=한글세계화문화재단)

이런 가운데 전주시에 본부를 둔 한글세계화문화재단(심의두 총재)의 활동이 눈길을 끈다. 한글세계화문화재단은 1969년 뉴욕에서 한글 세계화 활동을 시작해 지난 50년간 용어 표준화·한글화를 연구하고 가이드북을 제작 배포해 왔다.

매일 새로운 용어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IT 강국의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용어 표준화·한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한글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범정부적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 설명환 칼럼니스트
설명환 칼럼니스트는 작가이자 커뮤니케이터다. 과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공학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자문 위원과 국가정보기간 언론사의 객원 논설위원으로 선임되어 각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조언을 해왔으며, 현재 ICT 그룹의 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pr1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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