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緊急診斷] 이재용의 능력 vs. 반도체사업의 운명

박병주 201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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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VEGAS, USA (AVING) -- [緊急診斷] 이재용의 능력 vs. 반도체사업의 운명

(사진설명 1 : 삼성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수준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근래 벌어들인 엄청난 잉여금은 대규모 '투자'로 이어져 시장점유율을 더욱 끌어 올리고 있다. 그런데 '치킨런게임'을 주도하며 점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삼성은 '계산대로' 큰 돈을 안전하게 벌 수 있을까? 하지만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그게 얼마나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반도체산업이 무너지게 된 배경-통상문제-이 그 점을 잘 설명해준다)

1982년 - 삼성 반도체 사업의 시작

1982년 5월경이었다. 호암은 그 동안 수많은 美日 전문가를 비롯하여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거의 다 들었다. 관계자료는 손 닿는 대로 섭렵했고, 반도체와 컴퓨터에 관한 최고의 자료를 얻고자 애를 썼다. 그 결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만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었다. 기본구상이 가다듬어진 1982년 10월, 호암은 반도체, 컴퓨터사업팀을 조직했다. 이미 개발된 제품들의 성능, 원가, 가격, 시장동향 등을 조사하는 한편,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의 단, 장기 계획을 세워 매일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다.

1983년 2월 도쿄에서 최종 마무리를 서두르고 호암은 드디어 반도체 투자의 단안을 내렸다. 1983년 3월 15일을 기하여 삼성이 VLSI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을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전화로 통보하고, 이를 내외에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삼성반도체로서는 가히 역사적인 날이었다. 1년간에 걸친 철저한 기초조사와 밤낮을 가리지 않은 연구와 검토 끝에 내린 참으로 힘겨운 결단이었다.

<중략>

기흥공장의 부지는 처음에 정부의 특정용지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을 정부가 인식하여 삼성반도체가 사용하도록 특별히 양해해주었다.

<중략>

세계가 놀란 삼성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경제적 계산이나 위험을 초월하여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이 있었다. 둘째, 바이폴라 IC가 주제품이었는데 부천 IC공장에 10여년간의 경험과 인력의 축적이 있었다. 셋째, 삼성이 VLSI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후 세계 경제가 호황으로 전환되어 반도체사업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넷째, 최신 최고이면서 최염가의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다섯째, 재미 한국인 박사 등의 사심없는 조국애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참여로 고도의 두뇌집단과 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여섯째, 여자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근면한 노동력 확보와 훈련이 가능했다. 일곱째, 어려운 입지요건에 적합한 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여덟째, 긴축정책 속에서도 각 금융기관의 각별한 이해와 협력을 얻어 소요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암의 나이 73세에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했던 삼성반도체는 호암 생전 VLSI전선에서 미국이나 일본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210~212 쪽, 2010년 호암재단)

칠순이 넘은 나이에 반도체산업에 진출한 것은 호암의 도전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의 주기가 매우 짧아 많은 모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호암은 모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이 열린다고 확신했다. 이것이 73세에 내린 크나큰 결단이었다.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207 쪽, 2010년 호암재단)

1980년대 후반 ~ 1990년 – 일본반도체의 위상

'하이테크분야에서 세계의 선두주자(先頭走者)로' - 일본의 기술수준은 현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하이테크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있다. 반도체는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점하고 있다.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기술을 내장한 하이테크 형 자동차나 컬러텔레비전, VTR, 팩시밀리 등의 생산도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연구의 권위자인 니시자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는 메모리 용 집적회로에 관한 한 세계제일이다. 이를 통해 습득한 기술축적도 대단한 것이다. …..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선두주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반도체 기술은 256K비트 무렵부터 일본이 독점하기 시작했다. 1메가비트에서는 거의 일본의 독무대가 되었다 (기술대국, 일본의 장래를 읽는다 PHP 刊 - ( <日本企業의 野望 - 21세기 세계제패전략, 상편 31쪽> (日本經濟新聞社 編, 류화선 譯 : 원제 '現代企業入門' 1990년 출간)

'세계를 리드하는 일본의 반도체' - 대표적인 것은 '산업의 쌀'로 불리우는 반도체. "반도체 산업의 정보발신원은 미국의 메이커에서 완전히 일본의 업체로 옮겨졌다." 어느 통신사의 도쿄특파원의 얘기이다. 반도체는 컴퓨터는 물론 VTR, 전화기, 자동차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제품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산업계는 움직이지 않게끔 되어 있다. 산업의 쌀로 불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반도체 비즈니스의 주역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바뀌고 있다. <중략> …. 현재 DRAM의 주력제품인 1메가DRAM을 기준으로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60~70%(1990년)에 달하고 있다. 반도체는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시대에 따라 주력제품이 바뀌어져 왔다. 1970년대 말 주력제품은 4K DRAM이었다. 이때는 일본업체의 점유율이 겨우 10%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4K DRAM의 16배 기억용략을 가진 64K DRAM이 주류를 이룬 1982년에 들어오면서 美日 간의 점유율은 역전된다. 64K DRAM의 4배인 256K DRAM, 또 이의 4배인 1M DRAM으로 옮아감에 따라 점유율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일본의 독무대가 된 것이다.

'1989년 세계 반도체 메이커 매출액 상위 10사' – 1. 일본전기(NEC) / 2. 도시바 / 3. 히타치 / 4. 모토로라 / 5. 후지쯔 / 6. TI / 7. 미쓰비시 전기 / 8. 인텔 / 9. 마쓰시타 / 10. 필립스 – Data Quest사 / ( <日本企業의 野望 - 21세기 세계제패전략, 상편 84~85쪽> (日本經濟新聞社 編, 류화선 譯 : 원제 '現代企業入門' 1990년 출간)

20년 전 일본 도시바(Toshiba)의 위상

'재미있는 반도체 비즈니스' - DRAM이 얼마나 재미있는 사업인가는 도시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시바는 1M D램 세계시장에서 20~30%의 점유율(89년)을 자랑하고 있다. 1세대 전인 256K D램 시대까지는 반도체시장은 일본전기(NEC)와 히타치(日立)제작소의 '日日전쟁'으로 불리어 왔었다. 도시바의 경우 수위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러나 1M D램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도시바가 일약 선두로 뛰어오른다. 적극적인 설비투자 전략에 힘입은 것이다. 84년부터 88년까지 설비투자액이 1000억엔 이상이나 뒤진 도시바였지만 설비투자만은 이들 회사를 크게 웃돌았다. 이로써 도시바의 반도체부문 매출액은 6000억엔(88년도)으로 전년 대비 30%나 신장하고 이익은 1200억엔에 달했다. 영업이익 1760억엔 가운데 3분의 2를 반도체 부문에서 벌어들였다. 반도체 이익 중 적어도 700억엔은 1M D램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한번 '보물섬'을 찾기만 하면 그 보상은 막대한 것이다. ( <日本企業의 野望 - 21세기 세계제패전략, 상편 89쪽> (日本經濟新聞社 編, 류화선 譯 : 원제 '現代企業入門' 1990년 출간)

2010년 수출공화국(?) 한국에서의 반도체 위상

2010년 9월(3분기)까지 한국이 해외로 수출한 제품군 중 상위 5대 품목은 전통적 제조업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석유제품을 제외하면 반도체, 선박, 자동차, LCD가 차지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1위를 차지한 품목은 단연 '반도체'입니다. 지난 3분기 9개월 동안 한국기업이 해외에 수출한 반도체는 무려 385억 달러로 선박 352억 달러, 자동차 226억 달러, LCD 약 223억 달러보다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까지 한국 전체기업이 해외수출로 올린 무역흑자는 228억 달러, 그 중에서 50%에 육박하는 107억 달러를 반도체가 '홀로' 담당했다고 합니다. 수출공화국(?), 한국의 무역흑자는 반도체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라고 할 만큼 반도체가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vs. 사상 최대 영업이익

삼성전자는 2010년,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을 시현할 것 같습니다. 지난 3분기까지 삼성이 거둔 전체 영업이익은 약 14조2800억 원. 이 중에서 반도체 사업부문에서 올린 영업이익만 무려 8조3200억 원으로 이는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60%에 육박하는(약 58.3%) 수치입니다. 반도체 사업이 삼성전자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진설명 2 :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73세에 社運을 건 반도체 사업에 도전했다. 말년에 그런 어려운 결심을 한 덕분에 자식들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도 창업자처럼 말년에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총수자리에 복귀한 후 공식적으로 첫 나들이-CES2010-를 한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안경사업'을 지시한 이 회장. 그 지시 때문에 사업부를 책임지고 있는 사장이 나서서 안경을 개발해야만 했다)

반도체 사업성공의 배경 vs. 이건희 역할론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이병철 창업자의 예견과 당시 한국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1990년대 들어 글로벌 시장의 활황으로 회사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질 만큼 이익을 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창업자와 임직원들의 성과물이었고 또한 첨단기술산업에 목말라 있었던 한국(정부)의 성과이기도 했습니다.

근래 한국의 정보생산채널들이 생산한 정보 중에는 30여년 전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한 '주체'가 마치 이건희 회장인 것처럼 표현된 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반도체 사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호암전기(傳記,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에는 '이건희'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 fact 1)

그리고 삼성의 반도체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배경을 그 책이 잘 표현해 놓았는데 간략히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창업자의 선견지명, 그리고 글로벌 시장의 활황으로 천운(天運)이 따랐던 것입니다.

첫째, 경제적 계산이나 위험을 초월하여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이 있었다. 셋째, 삼성이 VLSI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후 세계 경제가 호황으로 전환되어 반도체사업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2. 그리고 무엇보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생산라인에다 고이 묻어버린 여직원들을 포함한 현장직원들과 인생을 반도체사업에 헌신했던 '삼성人'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당시 그들의 '싼' 노동력은 최저비용의 투자로 최신시설을 건설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업밑천이 됐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이익을 내 역사에 길이 남을 결실(結實)을 창조한 주인공들은 무명(無名)용사처럼 그 어디에도 이름이나 성(姓)조차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둘째, 바이폴라 IC가 주제품이었는데 부천 IC공장에 10여년간의 경험과 인력의 축적이 있었다. 넷째, 최신 최고이면서 최염가의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여섯째, 여자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근면한 노동력 확보와 훈련이 가능했다.

3. 또 삼성반도체의 성공은 한국정부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즈음인 1980년대 초의 한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난국(亂國)의 상황이라 정부는 오로지 '산업입국(産業入國)'에 '올인(All in)'할 수밖에 없었으며 삼성은 '첨단산업'을 일으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로부터 파격적인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군사정부체제하에서 투자자본을 조달해 준 금융기관 또한 사실상 정부기관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끌어 썼던 소요자금은 대한민국의 국가 자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여덟째, 긴축정책 속에서도 각 금융기관의 각별한 이해와 협력을 얻어 소요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 유능한 인력 수급이 가장 핵심 성공요인이겠습니다만, 해외파(海外派) 인재들은 '사심(私心)없이 오로지 애국(愛國)하겠다는 마음으로 조국의 반도체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당시 참여한 인재들이 가졌던 '조국애'의 본질은 어쩌면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私企業)의 영리사업에 참여했다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공익사업에 참여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빵'보다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재들이 조국애로 헌신한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정작 그 성과의 대부분은 창업자의 핏줄로 태어난 극소수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다섯째, 재미 한국인 박사 등의 사심(私心)없는 조국애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참여로 고도의 두뇌집단과 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국 삼성의 반도체사업 성공밑천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첨단기술산업 구축에 대한 의지와 수많은 '한국인'들의 피땀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만년 역사 이래 가장 위대한 성과를 창조해낸 범국가적 사업의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은 바로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회장의 뒤를 잇게 될 이재용 씨 또한 그 혜택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것입니다.

창업자의 핏줄이라는 배경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위대한 역사적 성과를 독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결과든,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적인 허점에 의해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로 생성된 결과든, 좁은 국토에 실타래처럼 얽혀 갖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기득권을 가진 극소수 인물들의 '먹이사슬유지'를 위한 방편의 결과든……

어쨌거나 그 위대한 '공(功)'을 독점한 가문은 반도체를 통해 창출된 어마어마한 '돈(힘)'을 바탕으로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영역으로 존재하게 됐는데 이제는 어느 누구도 결실을 독차지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AVING이 '긴급진단'을 통해 짚어보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로 인해 얻는 유무형의 이익- 반도체가 엄청난 이익을 올리는 바람에 삼성전자의 주식가치가 올라서 몇 조원의 이득을 추가로 얻었다느니,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삼성계열사의 주식(상장)으로 얻은 자산이 몇 조원이 더 늘었다느니 하는 것-을 폄하하려거나 부의 대물림이 정당한가에 대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는 게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관점에서, 이건희 회장 개인이 아니라 한국(산업과 기업)의 장래에 대한 'RISK(위기)' 요인을 한번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재용 시대(삼성이 지금까지 창출해낸 가치에 전혀 기여한 바 없지만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재용 씨에게 모든 권리-권한이 대물림 될 것이 확실하니까)에 삼성반도체 사업이 어떻게 될지 그 향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특정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전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AVING이 늘 강조해 왔지만 한국의 일부 기업은 이익이 날 때는 특정 개인이나 가문이 공을 모두 챙기지만 문제가 올 경우에는 국가(국민)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시스템의 허점이라고 말하지만 유독 한국이 그런 경향이 강한 편이지요. 이득은 독점하지만 책임은 거의 안 지는…)

국가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정책산업이 성장하고 성공하기까지 아무 것도 기여한 바 없는 극소수가 설사 그 과실을 독점했다 손치더라도 그에 관계없이 국가(국민)는 항상 (정책산업 같은 중요산업이 문제가 돼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997년에 터진 IMF사태가 우리에게 그런 학습을 경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일본 반도체산업의 역사가 보여준 '반면교사(反面敎師)'

한국보다 한발 앞서 반도체신화를 창조했던 일본(반도체메이커)의 성장과 쇠퇴과정을 분석해보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일본경제역사를 통해 이재용 시대에 도래할지 모르는 (한국/삼성의) 반도체산업의 위기가 어떤 형태인지 그려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며 세계 반도체시장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일본(반도체메이커들)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통상문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반도체라는 제품이 국가 산업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지대해 미국과 유럽이 일본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책략이 통상마찰을 야기시켰고 결국 '양대(兩大)' 소비시장이 견제를 강하게 하자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급작스럽게 찾아온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은 반도체산업(가전산업전반)을 오히려 과잉투자산업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기회가 재앙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그런 틈바구니에서 덕을 많이 본 셈이지요)

일본 반도체 독주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통상(通商)마찰…… 1986년 9월, 미일 반도체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의 골자는 두 가지. (1) 일본시장에 외국계 반도체의 참입을 확대시키고, (2)일본업체의 덤핑수출을 방지하며, FMV(공정시장가격)제도를 중심으로 수출모니터링(수출가격을 감시)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85년의 반도체 불황 때에는 세계적인 염가판매 경쟁이 전개되었다. 미국업체들의 경영악화, 경영위기가 이때 표면화되었다. 때문에 SIA(미국반도체공업회) 등은 '염가판매의 원흉은 일본메이커'라며 격렬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것은 미, 일간에 커다란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결국 정부간 협정체결을 낳게 된 것이다. <중략> 이렇게 미일 반도체 마찰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마찰은 미일 양국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구주공동체(EC)와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업계와 EC위원회는 89년초 일본의 對EC 수출 반도체메모리에 대해 수출최저가격(FLOOR PRICE)을 설정키로 합의했다. 수출최저가격의 취지는 미일 간의 FMV와 마찬가지로 구주에 대해 메모리 염가판매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日本企業의 野望 - 21세기 세계제패전략, 상편 92~94쪽> (日本經濟新聞社 編, 류화선 譯 : 원제 '現代企業入門' 1990년 출간)

이 같은 통상문제제기의 본질적 의미는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힘센 쪽(Buying Power가 강한 쪽)에서 <강제로 조정하려는 정치적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수치화(數値化)'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얼마나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그래서 통상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본(반도체메이커들)이 한국(삼성) 같은 후발주자에게 뒤진 배경은 기술이 뒤져서도 아니었고, 또 대규모 선행투자를 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입니다. (위 fact 2, 3 참고)

(사진설명 3 : SONY가 텔레비전으로 돈을 버는 것을 보고 텔레비전사업에 투자해 돈을 벌었고 Apple이 돈 버는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니까 그것을 모방한 제품을 개발해 돈을 벌고 있는 삼성. 그렇다면 삼성이 반도체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데 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기업이 없을까? 첨단 전투기와 우주선도 만들 수 있는 나라, 세계에서 달러를 가장 많이 쌓아두고 있는 나라, 그것도 국가의 정책산업 개발을 매우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라면 그런 수지 맞는 반도체사업을 자국 기업을 통해 당연히 추진할 것이다)

이재용 시대 vs. '산업의 쌀', 반도체의 주도권은 과연 누가 움켜쥘까?

삼성전자는 얼마 전 고덕신도시(경기도 평택)에 2018년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장 2조4000억 원을 투자해 부지조성에 들어간다고 하지요. 삼성이 그곳에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공장부지 규모는 기존 수원사업장의 2배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조라인의 규모도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부지조성 비용만 2조4000억 원의 규모라고 하니 그 위에 투자할 공장설비나 부속시설, 동원될 인력비용까지 계산하면 엄청난 투자가 이어질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건희 회장은 죄(罪)를 지었지만 국가로부터 벌(罰)을 '면제(赦免)' 받았고 이후 총수자리로 공식복귀하고 난 뒤 가장 강력하게 주문한 것이 바로 반도체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였지요.

허나 이 회장이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돈 들어오는 쪽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발 앞선 기술개발과 한발 앞선 선행투자만이 반도체사업에서 선두를 고수할 수 있다는 전략인데, 경쟁사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계속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은 이건희 회장이 아니더라도 삼성전자 임직원이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일 것입니다.

그런데 반도체사업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나라에는 반드시 필요한 산업입니다. 지난 날 제조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기업)이 그러했고 또한 한국(기업)과 대만(기업)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느 나라가 반도체산업을 가장 필요로 할까요? 또 한국(삼성)이 반도체 하나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그러면 어떤 국가(기업)가 그런 수지맞는 장사를 가장 하고 싶어할까요?

그렇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제조 인프라를 강화시키기 위해 '산업의 쌀(부가가치가 큰 제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부품)'로 불리는 핵심산업인 반도체를 빠른 시간 내에 부흥시켜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이 가장 많은 LCD 패널을 (제조산업 때문에) 소비하듯이 반도체 또한 가장 많은 물량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미 그런 상황이 도래했지만 말입니다.

이재용 시대 vs. 이재용 씨에게 필요로 하는 능력

그리고 별로 거론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실은 중국이 언제든지 통상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을 보유했다는 겁니다. 더욱이 중국은 '시장의 힘(Buying Power)'과 국제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머지않은(이미 시작됐지만) 장래에 한국경제에 미칠 중국의 영향력(=시장의 힘 + 정치적 힘)의 크기는 아마 1980년대 세계를 움켜쥘 듯했던 일본경제를 단번에 '침몰시킨(?)' 미국과 유럽의 힘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입니다.

(중국이 몇 개월 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사건을 통상문제로 엮어 일본에게 '압승'을 거둔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중국이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 전에 몸을 푸는 정도의 지극히 작은 '사례'에 불과한 것입니다)

2018년이면 최근에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던 고덕신도시 반도체공장이 가동하겠지요. 그 해가 이재용 씨 나이 '오십'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이야 아버지 그늘에 가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도 그때쯤에는 아마 총수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장이 가동할 때쯤 삼성 반도체사업은 지금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계속 '군림'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한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사업으로 전락해 있을까요?

한국인이라면 이 같은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기 싫겠지만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일본의 과거를 우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예측해 보는 것입니다만 '반도체'라는 특정품목을 '국가경제' 전체로 비약시켜 본다면 일본의 역사적 사례가 우리에게 '답'하기 어려운 결과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GNP는 (국민총생산 = GDP)는 90년 현재 세계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도 2000년에는 다시 20%로 뛰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日本企業의 野望 - 21세기 세계제패전략, '역자서문' 중에서> (日本經濟新聞社 編, 류화선 譯 : 원제 '現代企業入門' 1990년 출간)

일본경제신문사에서 1990년에 펴 낸 책을 번역한 류화선 씨는 자신이 쓴 서문에서 이 같이 일본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했습니다. 당시 세계경제 전체를 지배할 것처럼 도도하게 항해했던 제조강국, 일본을 조금이라도 연구한 지식인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예측했을 법합니다. 일본(기업)의 기술수준이나 투자능력을 감안하면 당연히 그런 평가를 내놓았다는 얘기지요..

2000년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총생산(GDP)규모가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1990년 14.3%를 차지했던 일본의 총생산규모는 오히려 퇴보해 2008년 8.9%로 떨어졌고 지금도 계속 하향추세를 그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던 '메이저' 정보생산채널인 일본경제신문사조차 불과 몇 년 뒤에 찾아올 암울한 미래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미국을 사게 되는 날'이라는 소제목이 담긴 책을 펴내면서, 첨단기술력을 가진 일본기업들의 자랑을 늘어놓고 반도체로 엄청나게 돈을 번 일본기업들을 띄우기에 급급했지만 그때가 일본경제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점(頂点)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은 내수시장도 크고 닦아 놓은 기술인프라도 탄탄하고 삼성 같은 규모의 기업이 십 수개나 돼 그나마 10년 이상의 장기불황을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최근 환율이 1달러에 80엔까지 '절상(切上 = 마치 원화가 1달러에 800원으로 가치가 오른 것처럼)'돼도 일본기업들은 크든 적든 여전히 이익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 달라 '삼성'이라는 하나의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아 놓고 있으며 오로지 수출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할 처지니……

'이재용 시대'에 삼성이 '기술'이나 '투자'로 풀어가지 못하는 예상외의 '난제(難題)'에 부딪히게 될 때 이재용 씨가 과연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요?

시절이 좋아 문제없이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돈 권력'을 바탕으로 초(超) 법적인 위치에 군림할 수 있었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모습에서 배운 것과 '보부상(褓負商)'이라 불리는 스승, 최지성 대표로부터 배운 것으로 이재용 씨가 장래에 맞닥뜨릴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문제를 해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재용 씨는 자신의 시대에 갖춰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비단 이재용 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민이기도 하지만요.

(사진설명 4 : 이재용 씨에게 반도체사업은 할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버지가 드리운 큰 '그늘'로 작용할 것이다. '이재용 시대'가 펼쳐져도 이재용 씨는 아버지가 반도체의 천문학적인 이익 때문에 누렸던 호사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총수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이재용 시대'에 져야 할 짐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緊急診斷] 이건희 시대 vs. 이재용 시대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Written by Ideak. Kim
Editor & Publisher
AVING News Corp. USA

(글쓴이 facebook account : 한글 - 김기대 / English - IDEA KIDA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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